RoboRoute UX design
로봇 사고를 처음 다룰 때는 사고가 난 뒤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로봇 업계 종사자를 인터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로봇은 설계된 대로 움직여도 작업 환경이나 장착 도구, 사용자의 위치 때문에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 사고 이후의 책임만 따지기보다 사람이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고 피하도록 돕는 장치가 필요했다.
RoboRoute는 2023년 4월부터 6월까지 UX 디자인 수업에서 진행한 5인 팀 프로젝트다. 빠르게 움직이는 로봇이 가까이 오면 어린이에게 로봇의 위치와 위험 정도, 피할 방향을 알려 주는 인터페이스를 구상했다. 실제 장치를 개발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손바닥·바닥·벽면에 정보를 투사하는 미래 환경을 가정해 사용자 조사, 시나리오, 와이어프레임과 사용 장면을 설계한 UX 콘셉트다.
나는 설문 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자 한 명을 직접 인터뷰해 녹화와 기록을 팀에 공유했다. 이후 손바닥 UI를 Figma로 옮기고 판넬 레이아웃과 최종 영상 정리에도 참여했다. 설문 수정과 두 번째 인터뷰, 페르소나, 시나리오 보드, 제품 모델링·렌더링과 최종 UI는 팀원들과 나누어 맡았다.
최종 콘셉트 영상
어린이가 이동 로봇을 발견하고 위험 정보와 대피 경로를 확인하는 과정을 담았다.
사고 책임보다 위험 안내
팀은 2023년 5월 4일부터 9일까지 24명을 대상으로 로봇과 사고에 관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사고를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로는 사고 위치의 실시간 정보가 45.8%, 로봇 사용 안내가 29.2%, 비상시 대응 방법이 25%로 나타났다. 표본이 작고 주변인을 중심으로 받은 응답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출발점으로 사용했다.
로봇 관련 업무를 하는 두 사람과의 인터뷰에서는 설문만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이 드러났다. 산업용 로봇 주변에는 펜스와 긴급 정지 스위치, 문이 열리면 작동을 막는 센서와 경광등 같은 안전장치가 있었다. 작업자도 별도의 교육을 받았다. 그래도 로봇 끝에 장착한 날카로운 도구가 센서 범위 밖에서 사람을 스치거나 좁은 작업 공간에서 피할 자리가 없어 다칠 수 있었다.
내가 진행한 첫 인터뷰에서는 개발자가 로봇의 다음 동작을 알고 있어도 사각지대에 사람이 들어오면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사람과 함께 일하도록 설계된 협동 로봇을 다루다가 팔 끝의 도구에 다쳤다. 로봇 몸체는 충돌을 감지했지만 별도로 부착한 도구까지 완전히 보호하지는 못했다. 두 사례 모두 로봇 한 대의 결함보다 작업 환경, 도구와 사용자의 행동이 함께 사고를 만든다는 점을 보여 줬다.

24명의 온라인 설문과 두 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필요한 위험 정보를 정리했다.
산업 현장 밖의 이동 로봇
초기의 주제는 로봇 사고 전반과 피해 책임이었다. 이 범위에는 산업용 로봇, 협동 로봇, 자율주행차와 배달 로봇까지 서로 다른 환경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수업 피드백에서도 산업 현장은 이미 안전 교육과 통제 장치를 갖추고 있으니, 일반 도로에서 어떤 로봇의 어떤 사고를 다룰지 좁혀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팀은 보도에서 이동 로봇과 마주치는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췄다. 어린이는 움직이는 물체에 호기심을 느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성인보다 몸이 작아 민첩하게 피하기 어렵다는 가설을 세웠다. 경비 로봇이 아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충돌한 사례를 바탕으로, 로봇의 목적을 알 수 없는 순간부터 접근과 충돌까지의 사용자 여정을 그렸다.
로봇을 대신 제어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가 주변 로봇의 위치와 접근 속도, 위험 정도를 먼저 알고 안전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 했다. 서비스 이름도 기능을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은 뒤, 로봇과 경로 안내가 함께 드러나는 RoboRoute로 정했다.
사용 시점에 따른 인터페이스 분리
스마트폰 알림은 사고가 일어나는 공간과 떨어진 작은 화면에 머문다. 팀은 정보를 확인해야 할 위치에 직접 표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인터페이스를 세 영역으로 나눴다.
- 손바닥 UI는 이름과 신체 정보를 등록하고, 제스처와 위험 등급을 익히는 시작 화면이다. 로봇이 가까워지면 색이 달라지는 배너와 진동으로 먼저 알린다.
- 바닥 UI는 주변 로봇의 위치와 접근 방향을 보여 준다. 가까운 로봇의 종류, 속도와 위험 등급을 확인하고 피할 경로를 바닥 위에 표시한다.
- 벽면 UI는 당장 피해야 하는 상황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로봇의 프로필과 사용 안내, 사고 신고와 안전 교육 자료를 펼쳐 본다.

정보량과 사용 시점에 따라 손바닥, 바닥, 벽면으로 화면을 나눴다.
처음에는 손바닥, 바닥과 벽면에 비슷한 메뉴를 반복해서 배치했다. 화면이 바뀌는 이유가 약해졌고 위험 안내보다 제스처 설명과 화살표가 더 눈에 띄었다. 특히 바닥 UI는 로봇이 접근하는 순간 가장 빨리 읽혀야 하는데 지도, 경고, 조작법과 여러 아이콘이 한 화면에서 경쟁했다. 수업에서도 화살표를 줄이고 로봇의 접근과 대피 방향을 더 강하게 구분하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바닥 UI에는 로봇의 위치와 접근 방향, 위험 등급과 피할 경로를 담았다.
콘셉트 단계의 한계
RoboRoute는 작동하는 하드웨어나 사용성 검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로봇의 위치와 속도, 기종별 위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어디서 받을지 정하지 않았고, 작은 투사 장치가 햇빛 아래 바닥에 정보를 선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경고 색과 제스처를 실제로 이해하는지 시험하지도 못했다. 설문 24명과 실무자 인터뷰 2건 역시 문제를 탐색하기 위한 자료이지 해결책의 효과를 입증하는 근거는 아니다.
이 작업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화면을 많이 만드는 일이 UX 설계의 진전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조사 범위가 넓으면 기능도 계속 늘어난다. 반대로 위험한 순간에 누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좁히면, 어느 화면에 어떤 정보를 남겨야 하는지도 훨씬 분명해진다.